<저항의 촛불> 12호 ( 발행일 : 2008-11-10 / 최종 업데이트 : 2008-11-06)

인용해도 될까요?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자와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
- 이명박의 황당 개그

“핵은 오직 핵으로만 저지할 수 있다. 핵 무장 선언을 하자.”
-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동성

“난 그걸[미국 정부의 위기 대책] 구제금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건 강도질이다.”
- 미국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

“6ㆍ25 남침 때 미군 파견, 외환위기 때 IMF 지원, 이번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미국은 좋은 짓을 한 게 너무 많다.”
- 극우익 조갑제

“저는 기업에 있었기 때문에 5개의 위험이 있으면 7∼8개 정도를 걱정하고 대비한다. 항상 한 단계 더 높은 염려를 하고 대비를 하고 있다.”
- 일시적 금융 안정에 우쭐해진 이명박

“시장은 … 다른 어떤 대안보다 성장, 부(富), 자원 배분 문제를 더 효율적으로 해결하고 평등도 더 잘 달성한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 상황 파악 못하는 전경련의 교과서 수정 요구

“‘전교조 교육을 받으면 취직이 어렵다’는 여론을 만들어 가는 것은 국가 지도층의 의무일 것이다.”
- 극우익 조갑제

“나중에 문제가 되면 빌린 것이라고 하면 된다.”
- 불법정치자금 혐의를 부인하는 민주당 김민석이 보낸 이메일

 

복지예산 대폭 삭감

‘불난’ 서민 집에 ‘부채질’하는 이명박

최근 발표된 예산안을 보면 이명박 정부가 경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려는지 알 수 있다.

이명박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내년도 예산에서 보건ㆍ복지 분야를 올해보다 9퍼센트 더 늘렸다”며 엄청난 선심이라도 쓴 듯이 말했다. 그러나 늘어난 복지예산 6조 원의 대부분은 기초노령연금 지급대상 확대분, 건강보험 재정부담금 등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법정 의무 지출’들이다. 오히려 빈곤ㆍ취약 계층과 직결되는 사업비는 4천6백억 원 이상 삭감됐다.

촛불시위가 벌어지기 전, “그간 복지재정이 너무나 빠르게 확대되었으므로 더 이상의 복지재정 확충은 없다”고 밝힌 강만수가 차라리 솔직했던 것이다.

정부의 복지예산 삭감 계획은 특히 저소득층에게 더 가혹하다. 차상위계층 양곡할인 지원, 의료급여 등 5천억 원을 삭감했고 한 달에 고작 2만 원 정도인 저소득층 난방비도 전액 삭감해 버렸다.

부자들에게는 5년간 무려 75조 원에 이르는 감세 선물을 안겨 준 이명박은 이런 방식으로 빈곤층 한 명당 지원 예산 6만 원을 ‘갈취’하려 한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이런 행태에 지독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난방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얼어 죽는 끔찍한 일이 올겨울에는 더욱 잦아질 것 같다.

장애인 자녀 학비 지원 등 장애인 예산도 1.6퍼센트 줄었고 장애수당과 장애아동수당을 무려 4백억 원 이상 삭감했다.

마른 수건 쥐어짜기

특히 올해 광우병, 조류독감, 멜라민 파동 등이 있었음에도 식품 안전 관리, 신종 전염병 대응체계 등 관련 예산을 삭감해 버리는 ‘대범함’도 보여 줬다. 반면 국방비는 28조 원으로 7.6퍼센트 인상됐다. 매일 7백80억 원을 전쟁 준비에 쏟아 붓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백골단’ 경찰관 기동대 충원 예산 6백억 원을 비롯해 ‘촛불 시즌2’를 대비한 집회대응 비용을 무려 7배 가까이 늘렸다. 공안수사 예산도 올해보다 32퍼센트 늘려 국가보안법 등을 이용한 탄압 강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전용기 구입에 3천억 원을 요구하는 ‘섬세함’은 잃지 않았다.

이처럼 이명박은 경제 위기의 책임과 고통을 노동자ㆍ서민에게 ‘전담’시키는 한편, 그렇게 짜낸 고혈로 부자들의 배는 채우려 하고 있다.

올해 한국 사회를 뒤흔들며 이명박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촛불시위처럼 파괴력 있는 대중투쟁을 건설해 노동자ㆍ서민이 아니라 이명박과 부자들이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게 해야 한다.

박건희

 

 

촛불 수배자들은 무죄다 수배를 해제하라

촛불 수배자들이 조계사를 빠져 나가 ‘잠행 투쟁’을 시작하자 보수 언론들은 수배자를 놓친 경찰이 한심하다며 “하루속히 검거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산하 31개 경찰서가 수배자 검거에 동원돼 매일 두 차례나 수배자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시내 주요 대학가와 도로에서 대대적인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 지역 사찰과 고시원 등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민주노총 건물에 막무가내로 난입하기도 했다.

경찰은 엄청난 경찰력을 동원해 사회 전반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공안 수사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집회 탄압 예산을 37억 4천만 원(올해의 7배)으로 증액한 것과 맞닿아 있다.

공포 분위기

보수 언론들과 한나라당 등은 수배자들이 “비겁”하고, “불법시위를 주도한 범법자들일 뿐”이라며 ‘자진 출두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 관련 재판 판사들도 야간집회금지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정도로, 현행 집시법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인 집회ㆍ시위의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고 있다. 이명박은 늘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부르짖지만, 이들은 양심ㆍ사상ㆍ표현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불법’은 우리가 따를 기준이 못 된다.

무엇보다 촛불 수배자들은 국민 압도 다수의 지지를 받은 운동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범죄자 취급받을 이유는 없다. 따라서 자진 출두할 이유도 없다.

“[자진 출두는] 일종의 투항으로 보였다. 촛불의 정신과 수배자들을 지지했던 시민들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봤다”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의 말이 옳고 이런 자세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촛불 수배자 검거에 혈안이 된 것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제2의 촛불’로 다시 분출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촛불 수배자들은 우리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경찰은 촛불 수배자 검거 작전을 당장 중단하고 수배를 해제해야 한다.

최미진

 

 

‘밑 빠진 독에 국민연금 붓기’ 하는 이명박

실력 없는 도박꾼 이명박이 노동자ㆍ서민의 연기금으로 도박을 벌이면서, 국민연금이 “제2의 BBK”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9월 26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8월까지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서 7조 2천억 원, 해외 주식에서 1조 3천억 원 등 총 8조 5천억 원의 손실을 냈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9월 15일 이후에만 5조 2천억 원이 투입됐고, 특히 주가지수가 9백 포인트 대까지 폭락하던 10월 마지막 주에는 매일 수천억 원의 연금이 주가 떠받치기에 동원됐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연말까지 대략 5조 원가량을 추가로 주식시장에 투입할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총 10조 원이 넘는 돈이 사라질 지경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만기 도래하는 은행채권 25조 원 중 10조 원어치도 사들일 계획이다.

10월에는 이명박의 조카가 근무하고 있는 맥쿼리그룹이 유동성 마련을 위해 내놓은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을 국민연금이 사 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친부자 자선 행각

투기꾼들과 해외 투기자본들이 국민연금의 ‘전천후 자선 행각’ 덕에 손실을 줄이는 동안 평범한 사람들의 노후는 불안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떠 연기금 운용을 아예 민간 투자회사에 맡기고, 헤지펀드 투자도 허용하려 한다. 5년 안에 주식투자 비중을 40퍼센트 이상 늘리려 한다.

당장 노동자와 시민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기금 운용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아울러 국민연금을 ‘부과식’(그해 필요한 연금을 그해 걷는 방식)으로 바꿔 연금의 주식 투기를 원천 봉쇄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적립식’(가입자가 낸 돈으로 투자해 그 수익으로 노후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면 막대한 적립금이 쌓이고 투자를 통해 일정 수준의 수익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연금 개악은 연기금을 적립식으로 바꾸며 주식 투자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처럼 “연금 가입자의 미래 연금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부과식 전환을 먼 미래의 과제로 미뤄서는 안 된다. 연기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주식시장에 동원되는 것이야말로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동원한 ‘친부자 자선 행각’을 중단시키면서 진보 진영은 부과식 전환을 대안으로 요구해야 한다.

김문성

 

한국 경제 위기와 투쟁의 과제 Q&A

왜 한국 경제가 위기인가?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폭발하면서 미국 경제에 크게 의존해 온 한국 경제도 위기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겁에 질린 미국과 해외 자본가들이 달러를 회수하기 시작하자 한국 주식시장은 무너지고 환율은 치솟았다.

금융이 방아쇠 구실을 했지만 이번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실물에 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주요 산업에서 이윤율(투자 대비 이윤의 비율)이 하락하면서 1997년에 IMF 위기가 왔고 그것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때 이래 기업주들은 더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고 역대 정부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이를 지원했다. 그 중에는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서 자본가들의 이윤몫을 늘리는 방법(예컨대 정리해고제나 비정규직 악법)도 있었고, 투기와 돈벌이 기회를 주기 위해 금융자본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예컨대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도 있었다. 그러나 낮은 이윤율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는 별로 확대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김대중 정부는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신용카드 시장을 키웠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수많은 신용불량자만 양산했다. 그 뒤에 지배자들이 키운 것은 부동산 거품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거품 붕괴 위기다. 지금 이명박은 거품 붕괴를 막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

어떠한 정책도 경쟁과 축적에서 비롯하는 이윤율 저하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해결할 수 없고 비슷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한미 통화스와프가 외환위기의 가능성을 없앴는가?

이명박 정부는 통화스와프가 “미국의 4번째 선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미국 국채를 내다팔겠다고 위협해 통화스와프 계약을 받아낸 듯하다. 빚을 내서 은행들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 미국 정부로서는 국채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막고 싶었을 것이다.

또, 미국 정부는 한국 등 신흥시장의 위기가 다시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ㆍ뉴질랜드 등과도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다.

게다가 미국은 약화하는 ‘달러 패권’을 강화할 필요도 있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가 아닌 위안과 루블로 결제하는 통화스와프를 체결했으며, 라틴아메리카 나라들도 자국 통화들로 직접 결제하는 방안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한국ㆍ중국ㆍ일본 등이 8백억 달러의 아시아공동기금을 조성하겠다고 하자 미국은 한국과 서둘러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통화스와프는 장하준 교수의 지적처럼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 더 받아온 것과 비슷하다”며 “우산 하나 더 있다고 폭풍우를 막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사실 통화스와프 3백억 달러는 우리 나라의 하루 외환 거래액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시적으로 숨을 돌리긴 했지만 한국 경제에 쏟아지는 ‘폭풍우’는 더 거세지고 있다. 철강ㆍ자동차ㆍ반도체 등이 모두 하향세를 그리는 상황에서 수출은 계속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부동산 거품과 연결된 높은 가계부채, 건설사 부실, 금융 부실 등이 위기로 폭발할 가능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금융 규제 완화 정책은 투기꾼들과 헤지펀드의 공격에 의한 외환위기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명박의 부동산ㆍ건설 경기 부양책이 경기를 되살릴까?

이명박은 “수출이 어려워질 것을 감안해 내수를 더 살려야 한다”며 ‘11ㆍ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감세ㆍ재정지출 등으로 총 14조 원을 투입하고, 규제를 모조리 풀어 부동산과 건설 경기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내수 살리기’는 노동자ㆍ서민의 소득 증대를 통한 소비 증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혈세를 퍼부어 전국 곳곳에서 행복도시ㆍ고속도로ㆍ고속철도 등을 만들고 건설 자본가, 투기꾼, 땅부자들이 돈 벌 기회를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만들어질 일자리는 제한적일 것이고,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일 것이다.

이명박은 이를 통해 부동산 거품을 유지하고 심지어 더 부풀리려 한다. ‘삽질’이 낳을 환경 파괴와 더 커진 거품의 붕괴가 낳을 끔찍한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지금, 건설사와 금융기관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 무려 3백83조 원에 이르는 은행권 가계대출이 곧 만기가 돌아올 것이고 건설업체 부도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6퍼센트 급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11ㆍ3 대책은 건설사와 금융기관의 위기를 해결하기 힘들다. 은행과 건설사들의 부실 규모가 수백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낮은 이윤율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세금을 깎아주고 돈을 더 대준다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리 만무하다. 재벌들은 지금도 3백47조 원이 넘는 현금을 쌓아놓고 있지만 투자할 생각이 없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진정한 대안은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는 경제 위기의 고통을 모두 노동자ㆍ서민에게 떠넘기고 노동자ㆍ서민을 더욱 쥐어짜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최근 열린 한미재계회의에서 미국과 한국의 기업주들도 이명박에게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노사관계 재정비”를 요구했고, 이명박은 이들에게 “노사 문제는 앞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부는 이미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정리해고 요건 완화, 임금 동결, 최저임금 개악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명박이 주장하는 ‘고통분담’과 ‘노사정 타협’은 이런 공격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강요이다.

이렇게 노동자와 밑바닥 서민들을 공격하고 쥐어짜면서 “마음만은 서로 따뜻하게 나누는 한 주가 되길 바란다”(이명박의 11월 3일 라디오 연설)니 정말 역겹기 짝이 없다.

따라서 이런 이명박 정부와 재벌ㆍ부자들만을 위한 ‘고통분담’과 ‘노사정 타협’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점에서 “사회적 대타협 제안을 환영”한 한국노총 지도부와 달리 민주노총 지도부가 “기만적인 ‘사회적 대타협’은 절대 안 된다”고 한 것은 옳다. 다만,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 등이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 폐기, 내각 총사퇴 등을 수용하면 우리도 고통분담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서로 한발씩 물러서자는 태도가 결국 잘못된 타협과 우리의 일방적 양보로 귀결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에 맞서서 민주당과 손을 잡아서도 안 된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친기업 정책과 한미FTA 추진 등을 비판하지만, 사실 이 정책들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재벌ㆍ부자들에 기반을 두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아귀다툼을 하다가도 부자맞춤형 위기 대책에 ‘초당적 협력’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동자ㆍ서민들의 연대와 투쟁이다. 특히 공기업 민영화, 한미FTA, 비정규직법 개악 등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원들이 앞장서 투쟁해야 한다.

쌍용차나 강남성모병원 노조 지도자들처럼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수수방관해선 안 되고 정규직ㆍ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해야 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공격에 맞서서 각개약진이 아니라 부문을 넘어서는 전국적ㆍ정치적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

노동자ㆍ서민을 살리기 위한 대안은 있다. 정부가 은행ㆍ건설사를 위해 쏟아 붓기로 한 2백조 원에 가까운 돈은 노동자ㆍ서민의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높이는 데 쓰여야 한다.

민주노동당도 제안했듯이, 금융기관을 국유화해서 “공공성을 생명으로 하는 서민 국책은행”으로 운영해야 한다. 부실 건설사와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인수해 임대주택으로 전환하고 서민 복지에 활용해야 한다.

재벌 부자에 대한 감세를 전면 철회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더 자세한 것은 10면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을 보시오.) 이런 요구들을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대중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이런 투쟁은 고장난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적 계획경제 건설의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정규직ㆍ비정규직 단결의 모범 군산 대우타타상용차지회

비정규직 철폐가 정규직의 권리도 보장합니다

최근 현대차 정규직ㆍ비정규직 노조 통합 부결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정규직ㆍ비정규직의 단결과 노조 통합의 희망을 보여 주는 곳도 적지 않다.

특히 금속노조 군산지부 대우타타상용차지회(이하 대우상용차지회)는 정규직ㆍ비정규직 단결의 모범을 만들어 왔다. 대우타타상용차는 10년간 상용차(덤프, 트랙터 등)만 전문적으로 생산해 온 회사로 2004년 인도 타타모터스에 인수됐다.

대우상용차지회는 2003년 25명, 2004년 30명, 2005년 30명, 2006년 50명, 2007년 40명, 2008년 30명 등 그동안 총 2백5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이처럼 꾸준히 정규직ㆍ비정규직 단결 투쟁을 건설해 온 대우상용차지회는 올해 6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만장일치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며 노조 통합(1사 1조직)을 이뤘다. 본래 조합원 7백81명에 비정규직 3백41명이 새로 노조에 가입했다. 노조 간부들이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입시켰다.

대우상용차지회 간부들의 절반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이다. 실질적인 내부 통합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김근규 부지회장에게 이런 단결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들었다.

대우상용차지회가 대의원 만장일치로 노조 통합을 결정한 것의 의의는 무엇인가요?

비정규직 문제를 비정규직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조합원들은 거의 없습니다. 언젠가는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조합원들은 없죠. 물론 막상 1사 1조직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등 반대 논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조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통합 반대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부 조합원들이 1사 1조직을 반대하는 이유는 고용불안 해소 방안 등을 노동조합이 제시하지 못한 탓에 심리적 안전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자본은 그 해법으로 비정규직을 ‘고용 안전판’으로 제시하죠.

문제는 노동조합의 태도와 입장입니다. 회사가 비정규직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 2002년부터였고 노동조합에선 2003년부터 매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왔습니다. 비정규직을 없애야만 장기적으로 정규직의 권리도 보장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IMF때 희망퇴직과 각종 복리후생 반납 등 어려운 시기를 겪어 온 [대우상용차의] 조합원들은 단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또 제2의 IMF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단호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단결을 더욱더 발전시키며 이러한 걱정을 해소하려면 단호하게 정규직ㆍ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해 가야 합니다.

구조조정에 맞서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갈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대우상용차지회의 강점은 부도 사태와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노동조합이 단단히 단결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사무직 차장까지 조합원입니다.

회사가 또다시 경영 악화 상태에 놓이게 된다면, 회사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은 민주적으로 현장의 정서와 의견을 수렴해 분명히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싸울 것입니다.

매번 우리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ㆍ정규직화 쟁취’를 주장해 왔고, 이번 노동자대회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말과 일치된 행동을 하기 위해 내 작업장의 비정규직 문제부터 회피하지 말고 해결하기 위해 실천합시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끌어안는 것은 지금 꼭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지금 실천해 나갑시다.

인터뷰ㆍ정리 이병무

 

IMF 때의 고통과 투쟁을 돌아보며

정동석(현대차 정규직 조합원)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는 요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10년 전 IMF 때를 돌아보게 된다. 그때는 전국적으로 “국가경제가 살아야 내가 산다”며 금모으기 운동을 강조해 많은 사람들이 결혼 예물, 아기 돌 반지를 아주 싸게 내놓았다.

내가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회사 측은 공장 내 모든 소모품을 삭감하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 때 난방 시간, 안전화, 안전모 등을 줄이거나 없앴다. 그러면서 첫째로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 2천여 명은 ‘소모품’처럼 내쫓겼다.

이어서 회사 측은 각 공장별 순환휴무를 실시했다. 처음에는 평균임금의 70퍼센트를 지급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무급으로 순환휴무가 실시됐다.

부부사원이나 형제가 함께 회사를 다니는 경우는 정리해고 1순위였다. 부부나 형제에게 두 명 다 해고되기 싫으면, 한 명은 정리해고, 또 한 명은 무급휴직하라고 협박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선 해고됐다. 공장 내 20여 개 식당에서 근무하는 여성 조합원 1천여 명 중 1백여 명만 남고 모두 강제로 ‘희망’퇴직했다.

결국 회사 측은 1998년에 5천여 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노동부에 신청했다. 사측은 정리해고 통보서(일명 노란봉투)를 조합원 개개인에게 전달했다. 노란봉투를 받은 조합원들이 관리자들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공장의 모든 생산이 중단됐고 노동자들이 36일간 공장을 점거해 파업을 벌였다. 조합원들은 정문에 승용차와 컨테이너, 산소통 등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사수대 5백여 명이 공장을 순회하면서 사무실 관리자들과 악질 노무관리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식당 여성 조합원들과 가족들은 매일 아침 정리해고 반대 구호를 외치며 공장을 순회했다.

아주 뜨거운 여름에 벌어진 점거파업은 노동자들의 엄청난 힘을 보여 준 싸움으로 나는 기억한다.

그런데 그해 8월 말쯤 노조 지도부가 “정리해고 철회가 아니라 정리해고 최소화를 인정하고 협상해야 한다”며 정부안을 수용해 부분적인 해고와 무급휴직을 받아들였다. 많은 조합원들이 집행부에 항의했지만 투쟁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합의안은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됐다.

IMF 때의 고통과 투쟁은 아직도 많은 현대차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기억되고 있다. 당시 비정규직부터 겨냥한 공격의 칼날은 결국 정규직에게로 향했다. ‘회사 살리기’가 아닌 단호한 파업만이 우리의 일자리를 지켜 줬다.

파업으로 5천여 명의 정리해고를 막아낸 것은 성과였지만, 막판에 식당 여성 조합원 등 3백여 명의 해고와 2천여 명의 무급휴직을 수용한 것은 뼈아픈 잘못이었다.

이러한 교훈을 명심한 채 다시 찾아 온 경제 위기에 맞서 잘 싸워야 한다. 지금 현대차 울산 2공장에서는 차량 단종으로 사내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1백15명이 해고될 처지다. 10년 전의 교훈을 잊지 말고 비정규직 해고 반대 투쟁에 정규직이 연대해 함께 싸워야 한다.

 

미국 대선

진정한 변화 염원을 보여 준 오바마의 승리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지독한 인종차별이 오랫동안 지속된 나라에서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정말 중대한 성과다.

1930년대 이후 미국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이토록 높았던 적은 없었다. 오바마의 선거운동을 둘러싸고 표출된 흥분은 사람들이 조지 부시와 신보수주의자들(네오콘)의 집권 8년을 경험한 뒤 사뭇 다른 종류의 정치를 얼마나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

오바마의 선거운동은 미국 정치의 중대한 변화를 바라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요구를 이용했다. 오바마 선거운동의 특징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동원됐다는 것이다. 그것도 난생 처음 정치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오바마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결정적 요인은 세계적인 경제 위기였다. 그리고 이제 오바마가 승리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약속한 ‘변화’가 실현되기를 바랄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압류 주택이 1백만 채 이상이고 그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추세가 역전되고 주택 압류가 중단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들은 새 대통령이 적극 나서서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노동자들을 해고 위기에서 구해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들은 또, 여전히 심각한 미국의 인종차별 수준이 더 완화되기를 바랄 것이다.

사람들은 또, ‘테러와의 전쟁’ ─ 부시의 지지율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데 크게 기여한, 재앙적인 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 점령 ─ 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런 요구들과 오바마를 지지한 부자들이나 기업들의 요구가 서로 충돌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부자들의 정당이다. 오바마의 선거 자금도 대부분 기업들한테서 나왔다. 민주당은 영국의 노동당 같은 정당들과 다르다. 영국 노동당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운동과 훨씬 더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미국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가운데 약 93퍼센트가 민주당으로 간다. 그러나 이 돈은 민주당이 거둬들이는 정치자금의 14퍼센트에 불과하다. 반면에, 민주당 정치자금의 67퍼센트가 대기업들한테서 나온다.

오바마가 쓴 선거운동 자금은 6억 5천만 달러[약 8천억 원]였다. 그는 이 돈을 평범한 사람들한테서 모았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이 돈의 절반만이 평범한 사람들한테서 나왔다. 나머지는 대기업들과 각종 ‘이익 단체들’의 거액 기부금이었다.

미국인들이 그토록 절실히 변화를 염원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에는 고등교육을 받는 흑인보다 감옥에 있는 흑인이 더 많다.

미국 흑인의 거의 4분의 1이 빈곤층이다. 그러나 오바마에 따르면, 미국은 “민주주의, 자유, 기회, 꺾이지 않는 희망”의 고향이다.

오바마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들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내려 한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은행들을 위한 7천억 달러 구제 금융 방안에 기꺼이 서명했다.

오바마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전에 빌 클린턴 정부에 몸담았던 자들이다. 클린턴도 평범한 사람들의 기대와 염원을 안고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클린턴 집권 기간에 미국의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교도소 재소자들은 거의 갑절로 늘었다. 클린턴은 미국의 복지 제도를 파탄냈고, 그의 전임자 네 명의 집권 기간에 벌어진 전쟁들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많은 전쟁을 벌였다.

클린턴 정부의 주요 인사들 다수가 지금 오바마 정부에서 중용될 거라는 말이 무성하다. 그 중에는 1990년대에 발칸 전쟁을 기획한 리처드 홀브루크나 ‘테러와의 전쟁’을 열렬히 지지하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도 있다.

앞으로 오바마에 대한 기대와 민주당의 한계가 충돌하면서 많은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 좌파에게 핵심적인 문제는 오바마 당선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갖게 된 엄청난 희망을 이해하고 그들과 효과적으로 관계맺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 좌파는 오바마가 개혁을 실행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기층 운동을 건설함과 동시에 미국의 양대 정당들이 추진하는 친자본주의 정책들에 반대할 수 있는 힘도 키워나가야 한다.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의 좌파, 노동계급, 반전 운동, 흑인들이 그들 자신의 의제들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 그들은 이 기회를 반드시 부여잡아야 한다.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가니스탄 민중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후보 시절부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증강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소셜리스트워커>의 중동 전문 기자 사이먼 아사프는 미군의 증파가 더 큰 비극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제 원조 구호 단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만연한 기아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

올겨울이 끝날 때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약 4분의 1인 8백40만 명 정도가 식품 부족과 고물가, 지난여름의 가뭄으로 굶어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

UN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은 아프가니스탄에 약 9만 5천 톤의 긴급 구호 식량이 필요하다고 경고한다.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풀뿌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고 있고, 이미 굶어죽은 사람도 무수히 많다.

세계식량계획은 아프가니스탄인 약 3천만 명이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추산한다. 이 수치는 지난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보다 늘어난 것이다.

미국 의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약 1천1백억 파운드(약 2백20조 원)를 썼다.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전쟁 초기에 약속받은 지원액 1백60억 파운드(약 32조 원) 중 1백억 파운드(약 20조 원)만을 받았다. 그나마 이 지원액의 약 40퍼센트는 ‘재건 사업’을 수주한 서방 기업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그러나 실제 아프가니스탄에서 재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재

이런 끔찍한 인재(人災)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증강하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은 병력 2만 명을 “증파”해 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비용을 줄여 줄 계획이다.

이 새로운 “증파”는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이 이른바 ‘온건파’ 저항세력 일부와 동맹을 맺고 그들을 ‘부족 민병대’로 전환시키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이런 협상들은 미군 중부사령부의 새 사령관인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가 추진하는 새 전략의 핵심이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밀어붙인 미국 정부의 매파들도 이제는 이런 합의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조지 부시[부시 1세]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토착 병력들을 활용해서 우리와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 …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느슨한 통치 세력이 운영하던 부족 사회 또는 군벌 사회였다.”

이 “토착 병력들”은 “서구 문명”의 야만적 폭격으로 박살내야 했던 이른바 “극단주의자들”의 다른 이름이다.

미국의 새 전략은 이라크에서 달성한 것과 유사한 합의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일부 저항세력을 매수해 만든 친미 민병대들에 “각성위원회”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그러나 이 전략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서 계속 잘 먹힐 거라는 보장은 없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저항 세력 사이에 협상이 열렸지만 탈레반의 한 고위 사령관은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딱히 할 말이 없다”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올해에만 주로 접경 지역 파키스탄에서 난민 약 27만 6천 명이 강제 추방되는 등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 대한 파키스탄군의 공습 때문에 피난길에 올랐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이 공습으로 아프가니스탄 저항 세력의 은신처를 없앨 수 있길 바란다. 그러나 접경 지역 전투가 확산되면서 전쟁이 더 위험한 수위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새로운 전략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파괴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을 것이고 올겨울 먹을 음식도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아프가니스탄 대중은 이 전략에 반발할 것이다.

 

경제 위기와 대안 논쟁 - 장하준 ②

경제 위기와 사회적 타협

김용욱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 경제에 대한 장하준의 분석에서 출발점은 박정희식 재벌 육성 정책(선별적 산업 정책)에 대한 옹호다. 그는 IMF 위기가 발생한 것은 이 정책이 한계에 도달해서가 아니라 탈규제 정책, 금융자본주의(주주자본주의) 등의 도입으로 국가와 재벌의 연결고리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장하준은 IMF 이후 양극화 심화도 금융자본주의의 확산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자본의 투기 활동으로 재벌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 배당금 확보에 몰두하면서 투자가 줄었고,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장률이 다시 고도성장기 평균(8~9퍼센트)으로 돌아가야 복지국가[사회보장제도] 등 진보적 정책을 펼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장하준은 자신을 “성장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재벌 “기업의 경영권을 안정”시키는 등 재벌에 대한 양보 조처를 도입해 재벌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재벌들은 친재벌 정책에 대한 ‘보답’으로 노동자들에게 복지국가를 선사할까? 장하준은 재벌은 “‘투자한 돈만 돌려받으면 우리 나갈게’ 하는 식으로는 못하기 때문에 노동자들과 타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다만, ‘국민’ 전체를 대표해 국가가 나서서 타협을 중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이 재벌의 투자, 즉 자본축적을 한국 자본주의의 원동력으로 본 것은 체제의 성격을 올바르게 파악한 것이다. 국가가 자본축적 과정에서 핵심적 구실을 한다는 것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다. 또, 복지국가 성립이 자본축적이 활발한 호황기에 상대적으로 더 쉽다고 주장한 것도 맞다.

그러나 활발한 자본축적이 가능한 조건에 대한 그의 주장은 너무 단순하다. 또, 진보적 정책을 쟁취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에 대한 문제에서 모호하거나 잘못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일단 경영권을 보장하면 재벌들이 고도 성장기만큼 적극적으로 투자할 거란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다. 자본축적에는 특정한 제도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인 이윤율과 세계 시장의 상황이 있다(그 중에서도 이윤율이 더 중요하다). 국가 개입이나 제도 변화를 통해 이윤율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생명을 잠시 연장시킬 수는 있지만 체제 전체의 이윤율을 쉽사리 끌어올릴 수는 없다.

사실, IMF 이후 한국의 자본축적률이 예전보다 떨어지고 동시에 성장률도 하락한 것은 주주자본주의의 효과라기보다는 이윤율이 예전 수준보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상당수 재벌들은 배당금을 내느라 허덕이기는커녕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은 채 투자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불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재벌들은 복지국가의 도입에 반대하거나 제한을 둘 것이다. 이것은 이윤에 목을 매는 모든 자본가들의 매우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하준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장하준은 최근 이런 주장을 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발전 전략을 포기[하고] 지나치게 개방된 자본시장을 다시 규제[하고], 기업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규제하여 기업 이윤을 실물투자로 돌려야 한다. … 내수를 진작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복지제도를 강화하여 국민들의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성장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불황이 심화될수록 기업 이윤 중 투자로 가는 몫은 갈수록 적어질 것이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복지제도를 확충하자는 그의 주장은 매우 훌륭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성장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장하준은 여러 책과 기고문, 인터뷰에서 1930년대 공황기에 복지제도를 도입한 스웨덴의 사례를 본받자고 주장했다. 사회적 타협을 통해 “파업을 안 하게 되면서 이익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하준은 불황기를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에 복지국가가 도입된 것을 사회적 타협에 따른 생산성 향상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먼저, 당시 스웨덴은 운 좋게 수출을 늘릴 수 있었다. 스웨덴은 중립국이었고 다른 나라에서 군비가 팽창하면서 스웨덴 상품 수요가 늘었다. 그러나 한국은 당장 수출 증가율이 추락하고 있고 상황이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국이 스웨덴처럼 거의 로또 수준의 행운을 누릴 거라 기대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1920년대 스웨덴의 치열한 계급투쟁이었다. 사실, 계급투쟁과 복지 제도 발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세기 독일 우파 총리 비스마르크가 최초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 것도 노동자들과 사회적 타협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에 대한 대응이었다. 심지어 제2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확대될 때도 전쟁으로 급진화한 노동자들에 대한 대응의 성격이 있었다. 영국의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저들에게 복지를 주지 않으면 저들은 우리에게 혁명을 선사할 것이다.”

장하준도 때때로 이런 점을 인정한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1920년대 치열한 갈등 덕분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는 기층 투쟁이 중요하다고 결론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타협하고자 하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국가가 타협을 중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준은 투쟁을 통한 급진적 변화에 반감이 있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보면 우파는 점진이고 좌파는 급진인데, 저는 그런 측면에서는 우파거든요.”

기층 투쟁

그래서 아시아 국가들의 IMF 위기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을 논의한 1998년 <LA타임스> 칼럼에서 장하준은 인도네시아 같은 혁명적 대중 항쟁을 “사회적 위기가 심화”한 부정적 사례로 언급했다. 반면, 한국 김대중 정부의 등장은 그런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기회로 보며 기대를 보냈다. 김대중은 확실히 대중의 인내를 종용하는 데 오랜 야당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자산을 사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복지국가가 아니라 불평등과 비정규직 확대였다.

물론 장하준은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 즉, 경제 위기 때 국가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국가는 오직 기층 투쟁의 압력이 거셀 때만 그에 반응해 양보를 내놓는다.

결국 장하준이 목표로 삼는 유럽 복지국가라는 것은 성공적인 자본주의 축적ㆍ성장과 치열한 계급투쟁이 결합돼 등장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서 한국에 사회적 타협을 도입하면 이것이 가능할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때 복지국가를 목표로 삼는 기층 투쟁을 고무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한 일이다. 당장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양보 조처를 따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설사 당장 물질적 양보를 얻지 못하더라도 기층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이 운동으로 표현되는 대중의 고통에는 동정적이면서도 운동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앞으로도 지배자들의 각종 시장주의 정책을 비판할 때 그의 저작은 유용할 것이다. 또, 복지국가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광범한 대중적 공감을 얻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장하준의 대안은 지금 경제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 지침이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존 몰리뉴의 실천가들을 위한 맑스주의 입문 37

경제 위기에 대한 몇 가지 단상

지난달은 맑스주의자가 지난 6주 남짓 세계 자본주의를 휩쓴 엄청난 경제 위기 말고 다른 주제로 글을 쓰기가 무척 힘든 달이었다. 특히 이 위기가 이제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다른 모든 신문과 마찬가지로) <저항의 촛불>도 이미 이 위기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므로 나는 여기서 전반적 설명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맑스주의적 논평을 몇 마디 하는 선에서 그치려 한다.

위기가 심화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웃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했다. 서방 지배계급들과 그들의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대변자들이 모순에 빠지고 망가지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그토록 확신을 갖고 숭상해 온 경제 학설들을 죄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 세계 근로 민중과 빈민들에게 닥칠 것이 불 보듯 뻔한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면 나는 울고 싶어졌다. 저들은 자신들이 부른 위기의 대가를 우리가 치르기를 바라고 있다.

웃기는 일들은 많았다. 예컨대, 신보수주의ㆍ신자유주의를 추구해 온 조지 부시의 우파 정부가 모기지 업체인 프레디맥과 페니메이를 인수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유화를 단행한 데 이어 일련의 국유화 조처들을 실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조처들은 … 사회주의 아닌가? 사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일 뿐이다. 그러나 몇 달 전이었다면 부시 일당은 그런 조처들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영국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영국 정부의 한 입으로 두 말 하기였다.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정부가 아일랜드 은행들의 예금을 지급 보증해 준 것에 대해 (그러면 사람들이 영국 은행들에서 돈을 빼내 아일랜드 은행들로 옮길 것이므로 아일랜드 정부의 조처는 시장을 왜곡하는 불공정 경쟁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은 바로 다음날 아이슬란드 정부가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파산했을 때 영국인들의 예금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냈고 자유 시장의 교황 노릇을 했던 앨런 그린스펀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결함”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사실, 리먼브러더스ㆍAIGㆍ메릴린치ㆍHBOSㆍ와코비아 ─ 이들은 수백 년 동안 축적과 착취를 자행해 온 자본주의의 거인들이자 세계의 지배자들이었다 ─ 가 잇따라 무너지거나 살려달라고 국가에 비는 것을 보면서 일종의 희열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저들의 곤혹스러움 뒤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 고통이 뒤따를 것임을 알고 있다. 임금 삭감과 해고, 실업과 빈곤, 주택 압류와 강제 퇴거 ─ 이런 것들이 경기 침체의 필연적 결과다. 복지 혜택 삭감과 교육ㆍ의료 등 사회 복지 사업의 축소 ─ 이런 것들이 머지않아 자본주의 정부의 대책이 될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굶주림과 물자 부족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개발도상국들에서는 발전이 주춤하거나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아예 붕괴할 것이고, 심지어 가장 부유한 선진국들에서도 노동계급은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결함

웃다가 울다가 하면서 괴로워하는 사이에 17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이 떠올랐다.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 다만 이해하라!” 그래서 이 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점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 지금의 위기는 자연 재해나 기후 재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이 위기를 “1백 년 만에 한 번 닥칠 만한 쓰나미”로 묘사했다. 그리고 주류 언론들도 “경제적 태풍”, “[경제적] 허리케인” 운운하는 말들로 넘쳐난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지금의 위기는 결코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신의 섭리도 아니다. 이 위기는 순전히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위기는 개략적이나마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고, 실제로 크리스 하먼이나 로버트 브레너 같은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린스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경제 위기들은 “1백 년 만에 한 번”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되풀이된다.

둘째,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 신뢰의 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언론과 언론의 평론가들은 항상 이런 위기들이 근본적으로 투자가들, 투기꾼들, 심지어 제조업자들의 신뢰 문제라고 주장하려 한다. 때때로 그들은 “근본적인 실물 경제는 건전하다”는 진부한 말로 교묘히 빠져나가려 한다. 물론 신뢰가 일정한 구실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만약 여러분이 은행 파산을 우려한다면 은행에서 돈을 찾으려 할 것이고, 그래서 은행 파산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만약 어느 회사에 대한 투자 수익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여러분은 다른 회사에 투자하려 할 것이고, 만약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면 여러분은 십중팔구 돈을 금으로 바꿀 것이고 그래서 경기 침체의 기간을 늘리고 정도를 심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뢰’나 신뢰 부족은 밑도 끝도 없이 제멋대로 마구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신뢰는 허공에 떠돌아다니다가 투자자들의 마음속으로 갑자기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증거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신용 경색의 시발점이 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문제들은 단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다. 실제로 모기지 상환을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의 현실적 문제였다. 그리고 모기지 대출업체들의 관점에서 보면, 주택 시장 위축 국면에서 압류 주택을 유리한 조건으로 팔 수 없게 됐다는 현실적 문제였다.

맑스의 경제학이 이룬 큰 성과 중 하나는 모든 부의 창출이 궁극적으로 노동을 자연에 적용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과 모든 [교환 ─ 지은이] 가치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의 지출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증권 거래, 헤지펀드, 환투기가 난무하는 저 높은 세계의 가격들이 이 현실의 물질적 가치들로부터 너무 멀어지게 되면, 머잖아 다시 되돌아가게 돼 있다. 마치 고무줄이 늘어났다가 줄어들 듯이 말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세 번째 요점인즉슨 지금의 위기가 단지 월스트리트 등의 탐욕스런 은행가들이나 금융업자들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말은 은행가들이나 금융업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히 탐욕스런 자들이고, 그들의 탐욕은 위기의 동역학을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두자. 그들이 최대한의 이윤을 가차없이 추구했을 때 그들은 엑슨과 셸, 월마트와 삼성 등 제조업ㆍ소매업ㆍ기타 모든 업종의 자본주의 기업들이 추구하는 것과 똑같은 논리, 즉 자본주의 고유의 경쟁 논리를 추구했을 뿐이다. 이를 두고 맑스는 “축적을 위한 축적”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의 과잉 대출은 호황기에 과잉 생산이 나타나는 일반적 경향의 변형일 뿐이다. 이런 경향도 이미 오래 전에 맑스가 지적한 바 있다.

이윤율

더욱이 현재 위기의 뿌리는 단지 금융 부문이 아니라 이른바 ‘실물’ 경제에 닿아 있다. 영국에서는 영국 경제가 3사분기에 이미 후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통계 수치들이 막 발표되고 있다. 3사분기라면 금융 붕괴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금융 위기를 촉발하고 앞서 말한 신뢰 상실을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히 ‘실물’ 경제의 문제들이었다. 특히, 전반적인 평균 이윤율이 최근에 저하한 것이 근본적 문제였다.

이 세 가지 신화 ─ 위기를 자연 재해로 묘사하거나 신뢰 상실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거나 탐욕스런 은행가들 탓으로 돌리는 것 ─ 의 이면에는 정치인들과 주류 언론과 따분한 전문가들의 욕구가 숨어 있다. 그들은 붕괴의 원인을 체제의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측면들에서 찾으려 하거나 자본주의 자체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분석을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 우리는 칼 맑스가 스피노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맑스는 1845년에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하고 썼다. 현재 상황에서 세계를 변혁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노동계급을 동원해서 해고, 임금 삭감, 주택 압류, 복지 삭감, 세금 증가 등 앞으로 벌어질 온갖 공격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나는 길은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이윤이 아니라 필요를 위한 생산 체제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뿐임을 이해하는 운동과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존 몰리뉴는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책갈피),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의 저자다.

 

세계의 노동자들

새로 발표된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는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노동계급이 성장했다고 지적한다.(출처 :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125호)

지난주에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새로운 세계 불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각국 주식시장이 급락했다. 경기 침체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수입(收入)ㆍ이윤ㆍ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자들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많은 주류 평론가들은 세계의 노동계급을 사멸하는 세력으로 여기고 무시해 왔다. 선진국에서는 성장하는 ‘중간계급’이, 남반구[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비정규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계급을 능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ILO의 새 보고서는 사뭇 다른 그림을 보여 준다. 그 보고서는 노동계급 ─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 이 여전히 중요한 세력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ILO가 노동자로 분류한 사람들이 전 세계에 약 10억 명이 있다. 이 수치는 자기 땅에서 농사지어 먹고사는 사람들이나 소작농을 제외한 것이다. ILO가 분류한 노동자들은 한때 서구 나라들에 집중돼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점점 더 세계화하고 있다.

세계 전체의 노동자 중에서 선진 부국의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5퍼센트를 약간 넘을 뿐이다. 이 비율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 낮아졌다.

반면에, 아시아ㆍ태평양ㆍ라틴아메리카ㆍ카리브해 지역 노동자가 세계 전체 노동자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에 있다.

세계 노동계급은 사멸하는 세력이기는커녕 그 규모가 급속히 증가해 왔다. 지난 30년 동안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부(富)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머릿수도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가 지배계급 ─ 우리가 창출하는 부를 빨아들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극소수의 기업주들, 고위 정치인들, 억만장자들 ─ 에게 엄청나게 많이 이전되는 부의 재분배도 진행됐다.

지배계급

다가오는 경기 침체에서 가장 고통을 겪을 사람들은 과거의 성장기에 얻은 것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 노동자는 30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부자와 빈민의 소득 격차는 훨씬 더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창출한 부에서 실제로 가져가는 몫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 어느 한 나라에서 생산된 부의 총합 ─ 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부를 창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 이 수치[GDP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는 지난 30년 동안 13퍼센트 하락했다.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는 10퍼센트 하락했고, 가장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9퍼센트 하락했다.

똑같은 과정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전보다 더 많이 생산하지만 ─ 더 오랫동안 더 강도 높게 일하지만 ─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ILO 보고서는 http://www.ilo.org/public/english/bureau/inst/download/world08.pdf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생산성

ILO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32개국 중 24개국에서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생산성 증가율이 임금 상승률을 앞질렀다.

다시 말해,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이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부의 몫이 세계적으로 낮아지는 데 한몫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의 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85개국 가운데 3분의 2 이상에서 불평등이 심화했다.

같은 기간에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의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진 나라가 7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러나 ILO 보고서에서 끌어내야 할 다른 교훈들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경우에 사정이 더 나았다.

‘노조 가입률’이 높은 나라들 ─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많은 나라들 ─ 일수록 소득 분배가 더 평등했다.

브라질ㆍ중국ㆍ인도ㆍ파라과이ㆍ싱가포르ㆍ스페인의 노조 가입률은 상승한 반면, 벨기에ㆍ핀란드ㆍ파키스탄의 노조 가입률은 지지부진했다.

세계 전체로는 노조 가입률이 약간 낮아졌지만, 이것은 옛 동구권 나라들에서 국가가 통제하는 ‘노조’의 가입률이 급속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록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전 세계에서 임시직 고용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런 일자리의 비중이 점차 커졌다. 물론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총 고용에서 시간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대체로 안정돼서 2006년에는 16퍼센트를 기록했다.

나라를 불문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의 급여 수준이 안정된 일자리보다 더 낮다. 유럽 나라들에서는 임시직의 급여가 정규직보다 평균 20퍼센트 더 낮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비공식 부문[도시 빈민ㆍ노점상처럼 정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 부문] 노동자들의 소득이 공식 부문 노동자들보다 평균 43퍼센트 더 낮다.

또 다른 불평등도 있다. 인도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이 1983년에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62퍼센트 수준이었는데 2004~2005년에는 약 44퍼센트로 떨어졌다. 요컨대, 전 세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경향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이 감소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

1990년대 초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는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다.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여성 고용이 고용 증가의 대부분 ─ 60퍼센트 이상 ─ 을 차지한 반면, 다른 나라들에서는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여성들의 일자리가 불안정한 직종에서 안정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 변화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남녀 성별 격차는 크게 좁혀지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여성 취업률은 49퍼센트인 반면 남성 취업률은 74퍼센트다. 중동ㆍ북아프리카ㆍ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는 여성 실업률이 약 80퍼센트 또는 그 이상이다.

세금 감면

전 세계에서 부자들의 세금 부담은 가벼워졌다. 세계 전체의 평균 법인세율 ─ 다시 말해, 기업의 이윤에 매기는 세금의 비율 ─ 은 1993년 38퍼센트에서 2007년 27퍼센트 미만으로 낮아졌다. 2000년 이후 법인세율이 증가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부자들은 개인[소득]세율에서도 혜택을 봤다. 그들의 평균 세율은 같은 기간에 37퍼센트에서 34퍼센트로 낮아졌다.

그와 동시에, 정부 세입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이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에서 나왔다. 이런 조처들로 노동자들이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왜냐하면 소득을 소비재 구입에 쓰는 비율은 노동자들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간접세 증가는 전 세계적 추세였다. 독일의 부가세는 1980년 13퍼센트에서 2007년 19퍼센트로 증가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부가세가 1980년 10퍼센트에서 2007년 15퍼센트로 증가했다.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의 공공 서비스 부담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부자들의 부담은 감소하고 있다.

사용자들의 보수

전 세계에서 사용자들의 보수는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보다 적어도 50배나 더 많다. 심지어 1백80배나 더 많은 경우도 있다. 그것도 상여금을 제외한 수치가 그렇다.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기업 경영자들과 평범한 노동자들 사이의 불평등이 엄청나게 커졌다.

2003년에 미국의 최고 경영자들은 평범한 노동자들보다 3백60배 더 많이 벌었지만 2007년에는 5백20배나 더 많이 벌었다.

홍콩과 남아공의 경영자들은 미국의 경영자들보다 덜 받는다. 그러나 홍콩의 최고 경영자 보수는 평균 노동자 임금의 1백60배, 남아공의 경우는 1백4배다.

상여금도 포함시키면, 미국 사용자들의 평균 연봉은 2003년 1천6백만 달러에서 2007년 2천4백만 달러로 상승했다. 이것은 연평균 거의 10퍼센트씩 증가한 수치다. 반면에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연평균 0.7퍼센트씩 증가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세계적 격차는 해당 기업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다.

위기

지금의 위기에서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듯이 자본주의는 세계적인 체제다. 그리고 이 위기에 맞서 싸우려면 전 세계 노동자들의 세계적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 노동자들은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과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기업 탐욕을 바탕으로 한 경제 체제를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을 바탕으로 한 체제로 대체하려면 선진국 노동자들과 가난한 나라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

ILO 보고서의 통계 수치들은 세계 노동계급의 수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반격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도 보여 준다. 보고서의 통계에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정치적ㆍ경제적 투쟁의 수준이다.

노동자들이 지난 30년 동안 사용자들에게 부를 빼앗겨 온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런 투쟁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현재 위기가 사회주의 세계의 건설로 이어질지 아니면 우리가 모두 또 다른 야만주의로 빠져들지 아닐지도 그런 투쟁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여전히 신자유주의 몽둥이를 휘두르는 IMF

신자유주의는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의 논리다. 이것은 오늘날 경제 위기에서 배워야 할 몇 가지 주된 교훈들 중 하나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이었던 1980년대에도 미국은 자신이 자유시장 정책을 실행하는 것보다 다른 국가들에게 그것을 채택하라고 종용하는 데 훨씬 더 열을 올렸다.

미국은 자국의 은행과 기업 들에 이로운 조처들 ─ 예컨대, 규제 철폐와 민영화 ─ 을 엄선해 추진했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 침체를 막으려고 공공 지출(특히 군비)을 늘리고 세금(대개 부자들에게 부과되는)을 깎아 주고 금리를 낮추는 일도 거리낌없이 추진했다. 이런 사실들은 독보적인 자본주의 국가라는 미국의 지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조지 부시 정부가 미국 금융 체제를 구제하려고 대규모 국가 개입을 단행한 것과 부시의 전임자인 빌 클린턴 정부가 1997~98년 동아시아 위기에 대처한 것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 위기 때 미국은 IMF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 매우 가혹한 긴축 정책을 강요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번엔 위기가 체제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번지면서 영국과 유로화 사용 지역을 강타하고 더 취약한 ‘신흥 시장들’을 휩쓸었다. 이들 중 다수 ─ 예컨대, 아이슬란드,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 는 2000년대 중반의 신용 호황 때 엄청난 돈을 빌렸다가 지금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야만적 도전

지난 몇 주 동안 미국 달러나 스위스 프랑에 견준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통화 가치가 폭락했다. 금리가 아주 낮고 자국 통화가 강세일 때 스위스 프랑으로 모기지 대출을 받으라는 권유를 따랐던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그 돈을 갚는 데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됐다.

결국 IMF가 다시 나서서 위기에 빠진 국가들에게 긴급 대출을 해 주고 있다.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 1990년대 ‘구제금융’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야만적 조건들이 또다시 강요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IMF의 구제 금융 20억 달러를 받으려고 금리를 무려 18퍼센트까지 올려야 했다. 신용 평가 기관인 피치의 브라이언 코울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금리를 올리면 최악의 경기 후퇴가 닥칠 것이다. 그러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이런 대응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아무리 IMF라 해도 위기에 빠진 국가 모두에게 줄 만큼 자금이 충분치 않을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IMF가 쉽게 빌려 줄 수 있는 자금인 2천억 달러도 금세 바닥날 수 있다.

둘째, 훨씬 더 강화된 긴축 정책들은 남반구의 더 강력한 국가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들이 시행된다면, 세계경제는 ‘최악의 침체’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정말로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미국과 IMF는 ‘위급한 나라들’을 양과 염소로 나누고 있다[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하나님이 사람들을 심판해 나눈다는 성경 구절에 비유한 것]. 지난 10월 2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브라질ㆍ멕시코ㆍ싱가포르ㆍ한국과 각각 3백억 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다고 발표하면서 이 나라들은 “체제 전체로 봤을 때 중요”하고 “잘 관리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렇게 논평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결정은 달러가 국제 준비통화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다. 또 이것은 미국의 지정학적ㆍ경제적 힘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에 재빨리 대응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 구실을 하고 있다. 적어도 미국의 동맹국들과 주요 무역 상대국들에게는 확실히 그렇다.”

같은 날, IMF는 자신이 승인한 정책들을 펴는 소수의 국가들에게 거의 조건 없이 제공할 수 있는 긴급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칠레와 체코공화국이 가능성 있는 후보로 거론됐다.

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은 자격 미달 국가를 구체적으로 거명하진 않았지만 아르헨티나만은 IMF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를 제외시킨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그의 후임 대통령이자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치하의 아르헨티나는 최근 외채 지급불능을 선언할 때까지 IMF의 ‘구제 방안’을 거부해 왔다. 또 미국과 영국에서 케인스주의가 득세하기 전부터 케인스주의 정책들을 추진했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경제를 구제하는 데 필요하다면 국가 개입도 괜찮다. 이제 무시하기엔 너무 강력해진 남반구 국가들의 국가 개입도 괜찮다.

그러나 나머지 국가들은 IMF가 늘 휘둘러 온 낡은 신자유주의 몽둥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Q&A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며 파렴치하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숙식비 지원을 삭감하려 하고, 단속ㆍ추방과 이주노조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탄압하고 이주노동자와 국내 노동자들을 이간질하는 데 온갖 역겨운 논리들이 이용되고 있다. 이정원 이주노조 교육선전차장이 그런 대표적 논리들을 반박한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가?

이런 신화는 매우 흔하고 강력하다. 경제 위기 시기에 실업률이 높아지면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유입이 늘어나서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IMF 경제 위기 때인 1998년에 실업률이 6.8퍼센트로 1997년의 2.6퍼센트에 비해 급격히 치솟았지만 같은 시기에 이주노동자 규모는 9만여 명이 줄어 16만여 명으로 떨어졌다. 실업률의 등락은 자본주의 경제의 부침에 따라 기업들이 생산과 인력을 축소ㆍ확대하는 것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흔히들 한 나라의 일자리 총량이 정해져 있고 이주노동자가 늘어난 만큼 일자리 수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을 뿐 아니라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소비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효과도 있다. 대표적인 이주노동자 밀집 지역인 안산 등은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지역 경제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한편, 현실에서는 실업률이 높아도 특정 산업에서 노동력이 부족할 수 있다. 흔히 3D 업종이라 말하는 분야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2003년, 2007년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보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은 실업률 증가의 진정한 원인과 주범을 흐리는 잘못된 주장이다.

미등록 체류자들은 내쫓는 것이 마땅한가?

이런 주장이 널리 퍼진 이유는 그동안 정부가 미등록 체류자 검거와 추방을 지속해 왔고 그 필요성을 강변해 온 탓이 크다. 그래서 ‘불법 = 범죄자’라는 인식이 매우 광범하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한 산업연수제ㆍ고용허가제 같은 ‘현대판 노예제’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ㆍ무권리ㆍ노예 노동 등에 시달렸고 이를 피하려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 상태로 내몰린 것이다. 그동안 이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쥐어짜 가장 득을 본 수혜자는 한국 기업들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에게 해로운 존재가 아니라 여느 노동자들처럼 이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정당한 대우는커녕 냉대와 멸시, 인간사냥식 단속으로 학대를 일삼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다.

무엇보다 체류 자격 없는 체류, 취업 자격 없는 취업이 범죄로 취급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자유로운 이주에 대한 규제는 불과 한 세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활동이었고, 특히 자본주의는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해 언제나 거대한 인구 이동을 수반했다.

이주노동자는 이 나라의 부를 훔쳐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온갖 재화와 부를 만들어 낸다. 또 이들의 노동으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주요한 연구 결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유입국의 짐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001년 유럽 15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이주노동자가 들어오면 GDP가 1.25~1.5퍼센트 증가한다고 밝혔다. 또 <세계 이주 보고서>는 1999년과 2000년에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일하는 나라 안에서 사회복지 수혜분보다 40억 달러를 더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 송금하는 수입은 그들이 만들어 낸 부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더 크고 많은 부분은 한국 사회에 남는다. 이주노동자도 기본적인 의식주 소비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이들의 소비도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

왜 이주노동자와 연대하는 게 중요한가?

한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계속 커진 것은 IMF 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주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추진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유입도 많이 늘었다. 기업주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인에 비해 낮은 임금을 주며 비용 절감을 추구한다. 또 기업주들은 이것을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압박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려는 것은 저임금의 하한선을 더욱 낮춰 한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즉 이주노동자들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기업주들이 이주노동자와 국내 노동자의 분열을 이용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진실은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이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주노동자들의 법적 지위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해 함께 투쟁할 때 모두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

 

‘야당 공조’는 민주노동당이 갈 길이 아니다

10월 31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민주당 대표 정세균, 창조한국당 대표 문국현을 만나 야당 의원들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에 공동 대응하고, “이명박 정부의 총체적 실정을 극복하기 위해 야 3당 정책공조를 강화”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강기갑 의원에 대한 이른바 ‘사전 선거운동 혐의’는 진보정당에 대한 부당한 정치 탄압이 분명하지만,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당 김민석ㆍ김재윤의 비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문국현은 총선 비례후보 2번을 주는 대가로 이한정한테서 6억 원을, 김민석은 기업주들한테서 4억 7천만 원을, 김재윤은 병원 인허가와 관련해 제약업자한테서 3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자들과 “공조”한다면 비리 혐의자들을 옹호한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이들과 손잡기보다는 촛불 민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강기갑 의원 탄압에 맞서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한미FTA 저지를 위해 민주당과 협력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 체결을 강행한 당사자인 민주당과 함께 싸우려다간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게 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은 국내 피해대책을 먼저 마련하고 미국 의회 일정을 지켜보면서 논의하자는 입장에 머물러 있다.

2004년 말에도 민주당 전신인 열우당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체입법 사이에서 줄타기하다가 결국 배신해 버렸고, 지금도 비슷한 배신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은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산분리 완화 반대, 강만수ㆍ전광우 경질 등 민주노동당이 내건 “5대 선결조건”을 무시하고 이명박의 은행 대외채무 지급보증안에 ‘묻지마’ 합의해 줬다.

이번 재보선 결과가 보여 줬듯이, 민주당은 이명박의 위기에서 아무런 반사이익도 못 얻고 있다. 진정한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은 민주당이 집권 기간에 보여 준 무능과 배신, 오락가락이 하나도 바뀐 게 없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못 믿을 자들과 공조할 것이 아니라 한미FTA 반대 대중투쟁을 더 강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열우당과의 “개혁공조”가 얼마나 쓰라린 결과를 남겼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박종호

 

선생님이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꿈이 자라는 책 ①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김진경 지음, 푸른 나무)

교실에서 짓밟히는 아이들의 꿈

송재혁(전교조 소속 교사)

진정으로 책읽기에 재미를 붙이는 순간 세상 보는 눈이 뜨이기 시작한다. 진지하게 책 속의 세계로 빠져드는 순간, 나는 나 홀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오히려 드넓은 세계와 유기적 관계에 놓이는 사회적 존재가 된다.

나는 학생들에게 선물을 할 경우 지난 17년간 이 책을 사주곤 했다. 김진경 선생님이 쓴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군부 독재의 폭압이 절정에 달하고 있던 1985년, 현직교사로 일하다 소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저자가 1988년에 낸 책인데, 여기 실린 글들은 그 이전에 쓰인 것들의 모음이다. 전두환 독재 시절 고등학교 교사로서 느낀 고뇌와 분노가 오롯이 느껴지는 진중한 글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반 한 친구가 ‘민중교육지’를 어떻게 구해 가지고 와서는 야자 시간에 감독 소홀을 틈 타 자랑스럽게 소리 내어 읽으면서 친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었다. 그 친구가 읽어준 시들은 교과서에 배운 것과 너무나 다른, 거칠고 직선적인 표현으로 넘쳤다. 어딘가 모르게 강하게 끌리던 그 시들에 대한 인상은 ‘민중교육’이라는 생소한 단어와 함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리고는 몇 년이 지나, 전교조 해직교사 신분으로 대학 학생회 초청 강연을 오신 세 분의 선생님들을 뵙게 되었다. 교직을 꿈꾸던 나에게, 그 분들의 꼿꼿한 기상과 단호하고 힘 있는 아우라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정의로움에서 오는 당당함에 빛나는 눈빛을 가진 그 선생님들 중에 김진경 선생님이 계셨다.

군사 문화가 온 사회를 지배하던 거대한 병영 사회에서의 학교는 어떤 모습이었겠는가? 그 속에서 학생과 교사는 얼마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겠는가? 이 책은 잊고 지내던 그 시절의 암울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군복 입은 교련 선생님의 일상적인 구타와 욕설이 난무하고 한 대라도 맞지 않으면 집에 가기가 오히려 불안했던 나의 고교 시절. 군대 가서 받은 잔인한 기합들은 고교 시절에 이미 모두 체험해 본 것들이었다. 한여름 방과후마다 교련 사열을 위해 운동장을 수없이 돌다가 친구들이 픽픽 쓰러져도, 수학 문제 못 푼다고 주먹으로 뺨을 수없이 맞아도 항의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침묵과 굴종의 세월들.

오늘의 학교와 교육도 잘 살펴보면, 감시와 통제와 처벌이 작동하고 성적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 학생과 교사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철저히 통제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따라서 그 시대의 고민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의 따뜻함은 늘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음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곧 우리가 희망을 놓지 않는 이유임도 알게 된다.

말이 안장에 앉아 사람을 몰고 가는, 주객전도의 시대는 심화되면 되었지 덜하지는 않다. 학교는 여전히 학생을 몇 과목으로 줄 세우고, 자율과 자치보다는 규율과 통제가 우선된다. 교문은 여전히 군대 위병소이며, 조회대는 높은 사람들이 호령하는 곳이다. 교실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보다 성적 좋은 사람이 더 대접받는 곳이다. 학교는 여전히 가기 싫은 곳, 인간보다는 그 무엇이 우선시되는 곳이다.

무엇이 학교를, 교육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이런 교육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이 사회의 권력 체계를 읽어내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과거의 빛바랜 학교 사진을 컬러 인쇄하여 다시 보자. 오늘의 학교가 제대로 보일 것이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박현욱 지음, 문이당) │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정윤수 감독)

소설의 문제의식을 놓친 영화

“일부일처제가 인간사회를 유지시켜 주는 제도일진 몰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맞지 않습니다” 하고 주장하는 주인공들의 도발적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가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나는 당신도, 그 사람도 놓치고 싶지 않아. 내가 무슨 별을 따 달래 달을 따 달래 그냥 남편만 하나 더 갖겠다는 거잖아”라면서 애절하지만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주인공.

그러나 현실은 배우 옥소리 씨가 낸 간통위헌소송이 결국 ‘합헌’이라니 기혼남녀들의 사랑은 형사처벌을 피하기 어려운 ‘불법’이다.

소설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부인 때문에 느끼는 억울함과 배신감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한 번쯤 본인 혹은 본인의 파트너가 ‘일편단심’이 아니라는 이유로 괴로워해 본 사람이라면 남자 주인공의 절절한 내레이션에 ‘그래 이런 기분이지’ 하며 손바닥이라도 마주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러한 ‘공감’에서 그쳤다면 그냥 뻔한 연애소설이 됐을 것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남성의 감정기복을 통해 소유욕과 독점적 연애, 배타적 결혼관이 우리의 행복을 억압하는 방식을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 있다. ‘사랑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세간의 ‘상식’이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반(反)한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아빠

여성 주인공은 결혼제도란 언제나 그 사회의 경제적 필요성과 맞물려 다양한 형태를 취해 왔다는 역사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두 아빠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가 ‘우리 딸’이니 함께 키우자는 여주인공은 지금도 ‘아버지’라는 단어가 아예 없는 중국의 모계사회 모수족 사례를 든다.

‘내 인생은 엉망이 됐다’던 남자 주인공의 의미 있는 의식 변화가 작위적이지 않게 전개된다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남자 주인공은 부인의 두 번째 남편을 ‘미친놈’이라고 여겨왔지만 마침내 ‘딸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며 그와 같이 이층집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보다 여러모로 덜 매력적이다. 특히, 배우 손예진의 ‘완벽한 여성’이 가진 발칙한 생활양식 정도에서 메시지가 멈춘 점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영화 속 여주인공은 수퍼우먼 컴플렉스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연인을 “약탈적이고 불건전한 방식으로 집착”(《성의 관계와 계급투쟁》, 알렉산드라 콜론타이)하지 않는 새로운 애정 관계를 고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류민희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책벌레)

쉽게 쓴 자본주의 역사

이 책은 자본주의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에 대한 유쾌하고 적나라한 해설서다. 경제, 사회, 법률 등 많은 문명 요소들은 그 하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서로의 연관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맑스의 이론을 휴버먼은 적절한 현실의 예를 통해 풀어냈다.

저자는 그들만의 학문이 돼 버린 경제학을 다수의 눈높이에 가깝게 끌어내릴 뿐 아니라 객관적인 어투에 숨어 있는 편향성도 파헤쳐 낸다. 이 책은 자본주의 옹호자들이 말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진정 어떤 것인지 알려 준다.

“이윤 추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이 됐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휴버먼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내내 당신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그 허약한 ‘진실’의 성립 과정을 끊임없이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납득하기 힘든 ‘진실’ 속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효과적인 나침반은 없을 것이다.

최병현

 

논쟁 ─ 박노자 씨에 대한 반박

혁명보다는 급진적 개혁이 바람직한가?

지난 10월 19일, 박노자 씨는 경제 위기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 등이 미국을 최상부로 하는 현재의 제국주의 위계질서에 도전하면서 지정학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썼다.

나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각국 지배계급 간 세력관계뿐 아니라 국제 반전 운동과 노동계급의 단결을 통한 국제적 저항의 가능성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써서 박노자 씨의 글에 링크해 뒀다.

이에 대해 박노자 씨는 <레디앙> 기고를 통해 “자본주의적 계산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나아가 그의 반박 글은 러시아 혁명의 사례를 들어 혁명 과정에서 발생할 폭력으로 인해 평범한 다수의 삶이 강간과 유아살해 등으로 범벅이 될 것처럼 묘사하며 ‘혁명보다는 급진적 개혁이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다.

그러나 그의 러시아 혁명 묘사는 부당하다. 박노자 씨도 “1917년 혁명의 진실한 모습을 배웠다”며 극찬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러시아 혁명이 소수의 음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의 적극적 지지를 연거푸 획득하면서 진행됐음을 보여 준다.

또, 혁명 과정에서 폭력이 나타나는 것은 지배계급이 혁명의 위협 앞에서 순순히 양보하기보단 폭력을 동원해서 혁명을 꺾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싸우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많은 피를 보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반동 세력을 분쇄할 기회를 놓친 19세기 파리 코뮌과 20세기 독일ㆍ스페인의 경험은 반혁명의 잔인한 결과를 보여 준다.

박노자 씨는 또 서구 민중은 “원한과 분노”가 잘 축적돼 있지 않기 때문에 투쟁과 혁명에 나설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낳은 “원한과 분노”는 제3세계뿐 아니라 시애틀(1999년), 제노바(2001년)에서 투쟁으로 폭발했다. 프랑스 최초고용계약법 반대 투쟁(2006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들춰낸 미국 사회의 계급 모순과 영화 <식코>가 보여 주는 미국 의료체계의 문제는 “[서구의] 피지배계급이 자본/국가 체제에 대단히 잘 포섭”돼 있다는 주장을 무색케 한다.

카트리나

끝으로 그는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며 금융기업 국유화, 무상 의료ㆍ무상 교육, 각종 부유세 징수, 대학 평준화와 남북한 공동 군축 등을 언급한다. 그런데 이런 과제들은 개혁주의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다함께’가 제시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주요 요구들’도 이러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요구들을 어떻게 쟁취하느냐는 것이다. 박노자 씨는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도” 이러한 요구들이 “국민적으로 선택되어지면” 나아갈 수 있다는 듯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대단히 급진적인” 요구들을 한국의 지배계급이 “국민적 선택”만으로 순순히 들어 줄 리 없다.

이러한 요구는 지난 촛불 항쟁과 같은 대규모 투쟁으로 지배계급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때에만 실현 가능하다. 그 투쟁이 발전하게 되면 자본주의 질서 회복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더욱 멀리 투쟁을 밀고 나갈 것인지 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김종환

 

아직도 변혁을 꿈꾸는 노동자가 박노자 씨에게

박노자 씨는 <레디앙>에 기고한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 버려라’라는 글에서 ‘다함께’ 회원들을 “대체로 도심 중산계층의 가정에서 곱게 커 배고픔 한 번 겪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혁명’을 이야기할 때에 과연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피부로 아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썼다. 나는 이것을 읽고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노자 씨의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박노자 씨가 정말로 “‘혁명’까지 외치는 다함께 분들의 열정을 존경”한다면 최소한 사실관계는 알아 보고 이런 주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함께의 고참 활동가 대부분은 20여 년 가까이 사회변혁 운동에 헌신해 온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탄압(국가보안법)으로 투옥됐던 사람들도 있다.

신념

또 다함께 회원 중 절반 이상이 노동자고 그 중 상당수가 노동조합원이다. 나처럼 20년 가까이 대공장 노동자로 노동조합 운동과 사회변혁 운동의 결합을 주장하며 싸우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노동자 회원들도 있고, 비정규직으로 살면서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는 회원도 다수 있다.

물론 젊은 청년과 학생 회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박노자 씨의 주장처럼 ‘배고픔을 모르고 살아온 중산층의 자녀’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중산층의 자녀들은 머릿속으로만 혁명을 느낀다’는 주장을 맑스ㆍ엥겔스ㆍ레닌ㆍ트로츠키 같은 ‘중산층’ 또는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혁명가들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혁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급진적 개혁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박노자 씨의 주장에 나는 이견이 있지만 그렇다고 박노자 씨를 ‘중간 계급 교수이자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박노자 씨의 강연도 들어 본 적이 있고, 저서도 한두 권 읽어 본 바 있다. 해박한 지식과 민중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본주의 모순에 대한 명쾌한 비판을 듣고 읽으며 내심 존경해 왔다.

박노자 씨가 주장하는 급진적 개혁의 요구들도 지지하며 함께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그러나 박노자 씨가 다함께 회원들을 함께 운동하는 동지라 생각한다면 근거도 없이 비방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김우용(기아차지부 소속 금속노조 중앙위원)

 

경제 위기에 맞선 유럽 대중투쟁 물결

경제 위기의 대가를 평범한 사람들이 치르게 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저항이 유럽 전역에서 고조되고 있다. 이런 저항의 물결이 최근 그리스ㆍ이탈리아ㆍ독일을 휩쓸었다.

그리스

그리스에서는 경제 위기의 비용을 노동자ㆍ서민에게 떠넘기려는 우파 정부의 시도에 반대하는 파업 물결이 고조되고 있다.

10월 30일 그리스 국영 항공사 노동자들은 아테네 공항에서 활주로를 봉쇄한 채 회사 매각 계획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11월 3일에는 아테네의 지하철과 시가전차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5일에는 지방정부 노동자들이 아테네에서 전국 집중 시위를 벌일 예정이고, 6일에는 학생들과 교사들이 파업에 돌입할 것이다.

한편, 통신 노동자들과 섬유 노동자들도 해고에 반대하며 작업장을 점거한 채 파업을 벌였다.

이탈리아

이탈리아 전역의 대학들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우파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 ‘개혁'에 반대하는 점거 농성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개혁안'에는 수업 시간 단축과 교사들의 대규모 해고가 포함돼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또, 이탈리아어 시험에서 떨어진 이주민 자녀들을 다른 초등학생들과 분리시켜 고립된 교실에서 따로 수업을 받게 하려 한다.

10월 30일 의회에서 교육 ‘개혁' 법안이 통과되자 1백만 명이 로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파업을 벌였고 대학생들은 도로, 철도, 다리를 봉쇄했다.

11월 7일과 14일에는 학생과 노동조합원도 참가하는 휴교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농촌 지역들에서는 마을 주민 전체가 초등학교 폐쇄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교수들은 대학 ‘개혁'에 항의하는 뜻으로 거리의 광장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피사의 사탑 옆에서는 당나귀 네 마리를 이용한 수의학 수업도 진행됐다.

운동 내에서는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조처들을 격퇴할 수 있는 방법을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고위 인사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비록 소수지만 총파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은 ‘개혁'의 구체적 내용은 여전히 변경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까지는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다.

올해 봄 우파 정부의 선출 이후 지속된 밀월 기간은 이제 끝났다. 아주 고무적인 것은 저항 운동들에서 인종차별 반대 행동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독일

11월 첫째 주 초에 독일 금속 노동자 3만여 명은 8퍼센트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경고 파업'을 벌였다.

대규모 노조인 금속노조의 표적이 된 기업들 중에는 독일 최대의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지멘스와 독일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도 포함돼 있다. 금속노조는 [기업주 측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률을 제안한 것은 3백60만 조합원들에 대한 ‘도발'이라고 규탄했다.

네 군데에서 시작된 이번 파업은 곧 다른 지역들로 확산될 예정이다.

 

YTN 노조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이명박의 ‘낙하산' 구본홍에 맞서 1백 일 넘게 당당하고 멋지게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구본홍은 이제 출근 시도조차 않습니다. 주변 호텔을 전전하는데 아마 호텔에서도 받아 주지 않을 듯합니다.

구본홍이 사장으로 임명된 후 부팀장을 교체했습니다. 우리는 부팀장의 업무지시를 듣지 않았습니다. 대신 선임 기자들이 데스크 역할을 했지요. 국정감사 증인으로 구본홍이 언급됐는데, 구본홍 이름을 빼려다가 저희들의 압력으로 보도가 되기도 했지요.

1970년대, 80년대 선배들은 언론 자유를 위해 정말 목숨 걸고 투쟁했습니다. 당시 언론 자유는 이상이었지요. 그러나 선배들의 투쟁 덕택에 이제 언론 자유는 상식이 됐습니다.

우리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상식을 이명박 정부가 깨뜨리는 것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4백여 명의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있습니다. 많은 조합원들이 파업에 찬성했습니다. 언론노조가 진행한 파업 투표도 높은 지지율로 가결됐지요.

연대의 확산에 저희들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 저지 투쟁에 각 지부 언론인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촛불문화제에는 촛불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1만 마리의 학을 만들어 주신 분도 있고, 검은 스카프에 일일이 YTN을 직접 수놓으신 분도 계십니다.

‘블랙 데이(항의의 뜻으로 검은 옷을 입는 날)'에는 모든 기자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또 국회 출입처 기자들은 리본을 달았죠. SBS는 앵커가 검은색 옷을 입고 화면에 나왔습니다. 원래 앵커는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하는데 대단한 용기를 낸 거죠.

촛불 1기가 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좌절한 듯합니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신념으로서 촛불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이명박과 구본홍이 힘으로는 우리를 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해고자들이 복직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리력에서 밀린다고 해서 싸움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보면 물리력에서 밀렸더라도 길게 보면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인터뷰ㆍ정리 강철구

 

재게재 ─ 간통죄 위헌 논란

간통죄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

최미진 기자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옥소리 씨의 간통죄 위헌심판제청에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국가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침해하는 간통죄가 존치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한편, 위헌 정족수 6명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의견을 내 ‘합헌' 의견보다 우세했다. 이는 1990년부터 벌써 네 번이나 위헌 소송이 제기되고 간통죄 기소율이 급감한 것이 보여 주듯, 국가의 성 통제에 대한 반감이 커진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간통죄 존치 여부에 대해, 간통죄의 구실이 가족제도 강화와 성 억압에 있음을 밝히는 지난 기사를 재게재한다. 이 기사는 옥소리 씨가 위헌심판제청을 한 시점에 작성했다.

5월 8일, 간통죄가 1990년 이후 네 번째로 헌법재판소(헌재)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2001년 헌재가 합헌판결을 한 이후로도 탤런트 옥소리 씨 등의 위헌심판제청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그동안 간통죄 폐지에 반대하던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최근 입장을 바꿔 여성민우회,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함께 간통죄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여성 단체들은 간통죄 존치를 주장하고, 간통죄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의 비율이 69.5퍼센트나 된다. (2008년 3월 조사)

간통죄 폐지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들은 간통죄가 여성을 보호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간통죄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여성의 존엄성이 아니라 바로 가족제도다. 그리고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대체로 여성들의 희생을 강조하는 것과 연결돼 왔다. ‘가족 강화’는 여성들이 집안에서의 역할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아이의 양육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일지라도 참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 왔다.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라는 관념 때문에 여성들은 남성의 60퍼센트밖에 안되는 임금도 감수하라고 강요받는다.

정부와 우익들이 간통죄를 유지하고, 이혼을 어렵게 하는 등 가족제도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이처럼 가사와 육아에 대한 책임을 개별 가정의 여성들에게 떠넘기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유에서다.

간통으로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것도 여성이다. 옥소리 씨 관련 기사에 달린 거친 댓글들만 봐도 간통죄가 얼마나 여성들에게 편견에 가득찬 시선을 안겨주는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간통죄는 이른바 ‘불륜’을 저지른 개인들을 비난해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국가권력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심어 준다.
간통죄가 ‘가정 파탄’을 막는 효과도 거의 없다. 간통죄 기소는 이혼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에 간통죄는 가정파탄을 막기 보다는 이미 파탄난 관계에서 복수심을 충족시켜 주는 수단이 될 뿐이다.

여성들은 간통으로 상대방을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이혼 시 위자료나 재산분할에서 더 유리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통 고소를 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경제적인 보장만 받으면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최근 20년간 간통죄 기소율은 급격히 떨어져 2006년에는 13퍼센트밖에 안됐다.

게다가 간통죄는 “성관계를 통한 사정 장면”을 목격해야만 신고가 성립되기 때문에 ‘현장’을 ‘덮치기’ 위해 배우자의 일상을 감시하면서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진다.

무엇보다 개인의 애정관계와 성생활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것 자체가 부당한 일이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범죄자로 만들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리가 없다.

여성들이 이혼 후에도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려면, 간통죄를 존치할 게 아니라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해결책이다.

여성들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여성이 남성의 3분의 2밖에 안 되는 임금을 받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현실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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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토론 참가기 ─ 무상 교육은 가능하다

나는 최근 ‘EBS 토론 광장 - 등록금 1천만 원 시대, 무엇이 문제인가?’에 시민 패널로 참가했다.

토론회에서 전문가 패널이었던 김민구 아주대 기획처장과 이영호 대교협 부장은 ‘등록금 인상과 적립금은 학교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영호 부장은 ‘하버드대학의 적립금이 31조 원인데,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을 다 합쳐도 적립금이 7조 원밖에 안 된다’고 매우 안타까운 듯 말했다.

그러나 대학들이 수조 원의 적립금을 쌓는 사이 학생들이 등록금 마련을 위한 알바로 바쁘고, 빚더미에 앉고, 그래도 등록금을 내지 못해 비관해서 자살하는 것이 ‘교육 경쟁력’인가?

민주당 의원 안민석은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지 않는 이명박을 비판했지만, “참여 정부 때는 재정이 부족”해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놨다. 겨우 몇 개월 전의 일인데 말이다!

노무현은 교육재정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서, 이라크 점령에 돈을 퍼붓는 등 국방비는 대폭 늘렸다. 대학 자율화 등을 핑계로 적립금 쌓기 경쟁을 부추긴 것도 노무현 정부다.

나는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제시하는 등록금 상한제를 지지하면서, 무상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했다. 패널들은 무상 교육을 ‘학생의 순진한 발상’으로 취급했지만, 실제로 무상 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투기를 벌이다 손실을 입은 건설사ㆍ부자 들을 위해서 국가 재정을 사용할 것인지, 노동자ㆍ서민의 필요를 위해서 사용할 것인지다.

경제 위기 속에 등록금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은 매우 높다. 11월 1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등록금 집회는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고, 시민 패널로 나온 한 학부모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듣고 방송 도중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지난해와 같은 폭으로 등록금을 인상하겠다고 밝혔고, ‘반값 등록금’을 약속한 이명박은 자신이 언제 그랬냐며 등록금 인상에 대해 나몰라라식으로 버티고 있다. 내년에 이 불만들이 언제 다시 거대한 촛불로 분출할지 모른다.

성지현

 

독자편지

<저항의 촛불>을 늘 갖고 다니자

나는 얼마 전 내가 다녔던 학교 행사에 참석해 <저항의 촛불> 11호를 13부 판매했다. 신문을 판매하며 다양한 주제로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이명박은 왜 민주주의를 무시하는지,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어디서 오는지, 노동자의 민주적 계획경제는 가능한 것인지, 사회운동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이 주된 토론 주제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촛불시위에서 경찰에게 맞아 부상을 당한 촛불 대학생이었다. 그는 ‘다함께’의 거리 판매대에서 <저항의 촛불>을 구입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소식을 접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줬다.

촛불 운동으로 급진화한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늘 <저항의 촛불>을 갖고 다닌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제때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태

 

독자편지

민주노동당은 정치 모리배들과 거리를 둬야

민주당 정세균, 민주노동당 강기갑,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10월 31일 회동을 갖고 “민주주의 압살과 야당 말살에 대해 야 3당이 공동으로 대응하고 투쟁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야당은 더는 탄압받지 않는다. 민주당 집권 시절 한나라당이 ‘야당 탄압’ 운운하며 집권당과 정쟁을 벌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은 열세에 있는 정쟁의 당사자일 뿐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김민석, 문국현 같은 부패 혐의자들과 한 배를 타는 것은 부르주아 야당들에 탄압의 희생자라는 이미지를 덧칠할 뿐 아니라, 강기갑 대표에 대한 탄압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이는 강기갑 대표를 탄압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민석이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버리고 정몽준을 택하고, 문국현이 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손잡았듯이, 이들은 언제든 민주노동당의 뒤통수를 치며 이명박과 거래할 수 있는 정치 모리배들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자들과 분명하게 거리를 둬야 한다.

김재헌(민주노동당 서울 종로구위원장)

 

독자편지

민주당의 생색내기 감세안을 지지할 필요는 없다

<저항의 촛불> 11호 독자편지 중 권오현 씨의 “부가세 인하가 서민에게 이롭다”는 기사의 큰 취지에 동의한다. 그러나 ‘민주당 안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작은 이견을 밝히고 싶다.

권오현 씨의 주장대로 모든 구매자에게 정률 세액을 요구하는 부가세는 사실상 역진세다. 따라서 간접세 비중을 줄이고 직접세의 누진 성격을 강화하는 게 서민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민주당 안이 이런 목표에 충분히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권오현 씨 지적대로 민주당 안은 고작 3퍼센트 인하이고, 그 다음해부턴 다시 1퍼센트씩 올려 원래대로 환원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민주당의 방안은 부가세 일시 인하를 통해 소매가격을 낮춰 불황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상품 판매에 도움을 주려는 조처로 보인다.

마치 한나라당의 부자 감세에 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의 ‘서민 감세’는 부자 증세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과 일맥상통한다.

10년간 법인세ㆍ특별소비세 등 부자 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데 앞장서 온 민주당 안을 지지해 혼란을 낳기보다 진보진영이 독립적인 부자 증세 요구를 강화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김문성

 

독자편지

어청수는 전ㆍ의경들의 인권도 말살했다

얼마 전 인권위는 촛불집회 때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여러 가지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검찰과 법무부가 반발하고 있다.

촛불시위 당시에는 전역한 상태였으나 그 전에 많은 시위들을 경험한 의경 출신으로서 나는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아쉽다. 전의경들의 인권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권위 발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전의경들은 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시위대들의 ‘폭력’ 때문이 아니다. 그건 상대적으로 작은 일일 뿐이다.

왜 전의경들은 며칠 동안 밤새가며 세종로를 지켰는가? 바로 집회를 원천봉쇄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이다.

촛불시위대의 숫자는 많았지만 그들의 대다수는 평화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뿐이다. 이를 원천봉쇄하고, 물대포를 쏘고, 사람들을 마구 연행해서 일을 더 크게 만든 것은 바로 경찰 수뇌부다. 이들이 시위대는 물론 전의경들의 인권도 말살한 책임자들이다.

경찰 수뇌부는 자신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전의경들이 고생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시위대들의 폭력(1만 명 중 1명 정도는 폭력시위대가 있을 수도 있으리라. 그 정도 돌발 상황은 어디에나 있는 것 아닌가)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려 한다. 인권위는 이런 경찰 수뇌부들의 반인권적인 지시에 대해서도 지적했어야 했다.

의경 출신의 한 독자

 

독자편지

자본주의만 강요하는 교육

내가 청소년 10명을 상대로 현재 세계경제 위기의 대안과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결과,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케인스주의를 선택하며 자본주의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주의 하면 생각나는 게 독재ㆍ부패ㆍ기아뿐이라고 대답했다. 옛 소련과 북한ㆍ중국ㆍ쿠바의 거짓 ‘사회주의’만을 알고 있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보여 줬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1학년 경제 수업에선 자본주의 경제학을 수개월동안 가르치지만 자본주의의 모순점은 1시간을 가르치면 기적일 정도다. 청소년들은 언론과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북한이 ‘사회주의’라고 주입받는다.

자본주의와의 기나긴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세계관과 무한경쟁만을 강요하는 이 교육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강성철

 

온라인 독자편지

공무원 노조 통합을 반대해야 하는가

김어진

<저항의 촛불> 10호 온라인 독자편지에서 가야 씨는 “투쟁을 회피한 채 진행되는 통합은 분열을 낳고 노조 내의 관료주의화만을 부추기기”에 일부 전공노 대의원들의 공무원 노조 통합 반대는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민공노 지도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합의해 준 상황에서 민공노와의 통합에 대한 일부 전공노 대의원들의 반발은 공감할 만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총체적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단결이 필요하다는 대중 정서가 존재하는데도 온건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통합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태도는 적절치 않다.

1930년대 초 프랑스 노동총동맹의 개혁주의 지도부가 좌파적인 노동조합(단일노동총동맹)에 통합을 제안했을 때 트로츠키는 단일노동총동맹 활동가들에게 통합 속에서 비판과 투쟁을 통한 입증을 조언했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으로 누가 단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물론 단결이 목적이 아니기에 우리는 통합될 때까지 투쟁을 연 기하지 않으며 비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따라서 전공노의 좌파적 활동가들은 통합을 지지하며, 더 넓은 현장 조합원들 속에서 온건한 지도부를 비판하며 연금과 임금,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나은 방안일 것이다.

 

온라인 독자편지

민중주의가 노동자 탄압을 배제하는가?

조성민

<저항의 촛불> 11호 독자편지에서 가야 씨는 ‘루즈벨트를 민중주의자(포퓰리스트)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하며 <저항의 촛불> 10호 ‘뉴딜이 노동자들에게 이득이 됐는가?' 기사에 대한 부분적 이견을 비친 바 있다.

가야 씨의 주된 논거는 루즈벨트 역시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준비했던 반노동자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가야 씨는 민중주의를 친노동적, 반자본적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민중주의는 좌파건 우파건 종종 동원하는 이데올로기다. 노무현도 때로는 민중주의적 언사를 사용했고 심지어 <조선일보>도 민중주의에 호소할 때가 있다.

역사에서 민중주의를 가장 상징하는 정치 세력은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정당일 것이다. 페론은 토착 지주와 외국 자본에 반대하는 주장으로 도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도 했지만, 강력한 민족주의 성격 때문에 파시스트를 포함한 극우도 페론에 이끌렸다. 페론은 노동조합 내 좌익을 탄압했고 자신을 지지하는 노조 관료들과는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1946년 페론이 선거에서 승리했을 때 아르헨티나 경제는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경제 호황 덕분에 폭넓은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고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페론의 2차 집권기인 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자, 페론주의 정당은 경제 위기로 크게 분열했고 페론주의 우파는 다시 파시즘으로 나아갔다. 페론 자신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좌파를 공격했다.

1975년 노동자들이 페론 정부에 반대해 최초로 총파업을 벌였다. 페론과 유착돼 있던 노조 관료들은 통제력을 상실했다.

루스벨트의 정책을 민중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친노동자적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민중주의란 것이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대중들의 감성에 호소하고 때로는 그들의 입에 맞는 정책을 내세우기도 하는 정치 행위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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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5백 일 문화제

지난 11월 1일,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5백 일 문화제가 영등포 홈플러스 앞에서 열렸다. 이날 문화제는 수도권과 순천지회 이랜드 조합원을 비롯해 기륭전자, 강남성모병원, 호텔 르네상스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비롯한 연대 단체와 네티즌 등 3백여 명이 모여서 5백 일 전 시작된 투쟁의 ‘첫 마음으로 승리를 향해’ 투지를 모으는 자리였다.

10월 25~26일 진행된 이랜드 노조와 사측의 2차 교섭은 해고자들의 복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렬됐다. 노조는 이랜드를 인수한 홈플러스의 지분 89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는 테스코 사를 규탄하며 영국 대사관 앞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투지를 북돋아 주며 끝까지 투쟁한다면 면목분회 임혜숙 조합원의 말대로 “모든 조합원이 현장으로 당당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윤진

 

신촌 촛불문화제

10월 29일 신촌 현대백화점 앞 놀이터에서는 서대문ㆍ은평ㆍ마포지역 공동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그간 지역 촛불을 유지해 온 12개 지역 단체 회원과 네티즌 1백30여 명이 모여 ‘촛불 시즌2’의 힘찬 시작을 알렸다.

이날 집회는 촛불 운동 탄압 규탄, 국가보안법을 이용